먼저 용서하고 돕는 것

생각해 보면 사업할 때 참 힘들었던 것 같다. 항상 생전 처음 만나보는 어려움과 고민이 있을 때 그 기억을 남겨 놓고자 이 블로그에 글을 써왔다. 그러나 군생활을 하면서는 딱히 블로그에 쓸 것이 없었다. 경험에 의한 깨달음은 거의 없고 그저 혼자 공부하는 것에 의한 배움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전역을 한달 앞두고 영창이라는 평생 기억에 남을 경험을 했다. 아픈 경험을 통한 배움일 것이다. 요약하자면 믿고 의지하던 상사가 자기 살자고 나를 넘겼다. 그래서 첫날은 몹시 화가 났더랬다. 그러던 것이 둘째날에는 이해가 되더니 셋째날 밤에는 급기야 동정심도 생겼다.

왜 그래야 했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시간이 갈수록 이해가 됐다. 한편으론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행함으로써 부하들의 신뢰라는 더 큰 것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했다. 이제 더는 누가 그를 따르겠냐고. 그렇다. 그런 점에서 그는 참으로 소탐대실한 것이 아닌가. 실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가진 것을 지키지조차 못했고.

이후 내가 같은 일로 곤란함에 처한 동료들을 심적으로 위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나도 화가 나서 다 뒤집어 엎겠다 생각했었는데 결국 화는 화를 부른다. 나의 복수는 다시 나에 대한 타인의 복수를 낳을 뿐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증오를 끊어야 한다. 나 역시 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소탐대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안다. 복수는 그저 소탐대실일뿐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당한 것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따라서 내가 당함으로 끊고 가는 것이 길게 보면 가장 크게 얻는 길이다. 적어도 누군가는 나에게 미안함을 갖고 살아갈 것이요, 종종 누군가는 내가 증오를 끊고 가는 것에 대해 고마움을 안고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화가 나는 순간이든 내가 해야할 것은 용서이고 화해다. 그것이 더 크게 이기는 것이고 모두와 함께 살아가는 길이다.

따라서 나는 살아가면서 언제든 내게 주어질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잘잘못을 전가하지 않을 것이다. 내게 잘못한 사람은 측은하게 여기고 용서할 것이다.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최대한 손을 뻗을 것이고 그로 인해 내가 더 다친다 해도 사람을 얻는 방향으로 행할 것이다.

어떠한 위기의 순간에도 사람을 얻으면 크게 얻는 것일테니. 어떠한 묘수도 사람을 잃으면 위기를 빠져 나가봐야 훨씬 더 크게 잃는 것이다. 어쩌면 군생활의 말미에 좋은 계기로 다시금 희미해지던 원칙을 상기하게 됨에 감사할 일이다.

사람은 극한의 순간에 처해야 진짜 모습이 나온다는 것도 오랜만에 느꼈다. 겉모습과도 다르고 평소의 젊잖음이나 느긋함과도 거리가 있다. 그러니 어느 때이고 사람의 극단적 상황을 목격하는 것은 대단히 소중하다. 그가 무엇에 떨고, 두려워하고, 기뻐하고, 어떤 것을 기준으로 의사결정 하는지 샅샅히 보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금전의 손해나 신체의 고통, 정서의 힘겨움을 모두 베팅하고서라도 여전히 나이 서른셋 먹고 사람을 남기는 것을 최우선의 결정 기준으로 한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동안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 선배님, 나의 인격 수양의 장이었던 회사에 감사한다.

그런 사람들, 엄청나게 힘들었던 시간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누가봐도 화나는 상황에 먼저 용서하고 나 살기도 죽겠는 와중에 남을 도울 생각을 할 수 있었겠나. 그러니 이것은 지나온 나의 인생 1막에 대해 깊이 감사할 일이다.

세상이 나를 시험에 빠뜨려도 항상 나는 용기를 내서 나부터 정의롭게 행동할 것이다. 공명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게 모두를 위해 더 현명한 길이고 나에 대한 신뢰를 키우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고마운 사람들

내 주위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 허투루 살아오지는 않은 것 같아서.

참 대단한 여정이었다. 하루도 늘어지는 법 없이 열심히 살았다. 후회도 없고 그렇게 부족함도 없었다. 나는 계속 훌륭한 사람들을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조급해 하지는 않는다. 때가 되고 간절히 바라면 원하는 사람을 어떻게든 찾게 될 것이다.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지금껏 숱하게 그래왔듯이. 하지만 또 나아지는 날이 있을 것이다. 언제나 열심히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고,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다. 생각하는 대로 안되겠지만 그 안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이다.

한번뿐인 인생에서 결국 가장 의미있는 일은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과 같이 무언가 변화를 꿈꾸고 노력했다는 사실 자체일 것이다.

그런 과정이 하루하루 반복되고 쌓이며 어떤 변화를 조금씩 만들어 내고 우리에게 전에는 몰랐던 배움이나 깨달음을 준다면 그것은 행복의 덤일 것이다. 가족과 개인사가 주는 가치가 행복을 이루는 최대 요소일 것이고.

그러므로 모든 것의 시작은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매일의 일상을 의미로 만들어주며, 노력 자체를 보상이자 행복의 길로 이끌어준다.

지금껏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준데 감사함을 느낀다. 더불어 앞으로도 그럴 수 있기를, 나부터도 좋은 사람들이 계속 모일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미물

작은 사업 하나 만드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생각한다. 더불어 무엇이든 작은 것이나마 자기 일을 만들고 잘 해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존경심도 가진다. 내가 했던 일 역시 작은 그런 일이었지만 멀리 빠져서 보니 새삼 남 훈수 두거나 저런건 나도 하겠다느니 짜쳐서 안한다고 했던 모든 일들이 저마다 얼마나 소중하고 어렵고 위대한 일인가를 생각한다. 내가 어려도 한참을 어렸던 것이다.

자기가 무슨 작은 일이든 직접 업을 일으켜 세워 본 사람이 아니면 남의 어떤 작은 일에 대해 감히 무시하거나 야유할 자격이 없다. 물론 내 일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남의 일 평가할 자격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냥 다들 잘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거지. 온전히 제 손으로 일을 일으켜 보기 전까지 그걸 자기도 맘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시간이 갈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훈수 둘 게 없어진다. 할 말도 없고 해도 그게 정답일 리 없고 정답이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냥 자기 일을 작게라도 도전하고 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 존중해 마땅하다. 구멍가게에서 발로 뛰는 자영업자가 독방에서 훈수만 두는 명망가보다 훨씬 실존한다. 그런 사람들을 리스펙하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큰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란! 나는 아직 그저 생각하는 미물일 뿐이다.

행복으로 향하는 길

책을 많이 읽어 아는 양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면으로 깊게 파고 들어가 나를 마주하는 것도 비슷하게 중요한 일 같다.

나를 마주하게 되면, 그땐 내가 왜 그랬을까? 왜 그런 결정을 했고 어쩌다 사람을 잃었을까? 왜 그런 실수를 했고 내 삶을 곤경에 빠뜨렸을까? 하는 생각들이 스멀스멀 떠오르는 것이다. 지금도 내 머리 맡에는 숱한 책들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 중에는 내 과거와 내 삶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실은 나를 발전시키고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나의 과거, 내가 살아온 궤적과 잘못들이 아니겠는가. 조용히 눈 감으면 그 안에 내가 만나온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있고, 나의 오만함과 성급함, 그리고 어설픔이 있다.

남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만큼 소중한 것들이 눈을 감으면 순간 훅 하고 다가오는 것이다. 하여 비교적 정신이 또렷한 밤에는 책을 들추기 보다 일부러 내 과거로 훌쩍 여행 다녀올 때가 있다. 거기서 내가 잘못했던 사람에게 사과하고,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은 용서하고, 나의 어설픔에게는 그저 싱끗 미소 짓고는 도망치듯 돌아오곤 하는 것이다.

어느 때인가 일이 잘 안풀리기 시작하면서 환경 탓도 해보고 시절 탓도 하고 주변 사람들 탓도 많이 했더랬다. 가슴 속을 쳐다보면 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었는데 그게 누가 내게 잘못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그저 나의 시기고 질투고 자존심이고 유약함이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아무도 내게 위해를 가한 사람 없었지만 나 혼자 스스로를 점점 더 유리방 안에 가두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의 시선에, 잘 알지도 못하며 거드는 말 한 두마디에 크게 좌우되며 위축됐던 것 같다. 실은 충분히 의미있게 노력하며 재미있게 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위축될만큼 좋은 사람이 주변에 남지 않은 것도 아니요, 과거 잘못과 실수를 반복해 짓고 살만큼 앞만 보고 산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다 상대적 비교였다. 남들이 한다고 착각했지만 내가 스스로 한 것이다. 실은 사람들은 남의 삶과 성취에 큰 관심이 없었다. 있어봐야 그리 오래 가지 않았고. 오로지 스스로의 노력과 스스로의 만족만이 있을 뿐이었다. 행복과 충만에 이르는 길은.

군 생활이 나에게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볼 충분한 시간을 준 것 같다. 이제 나는 자주 과거로 돌아가 스스로를 마주하기도 하고, 내 마음이 스스로를 남과 비교해 불행해 하지 않게 감사하며 기뻐할 줄도 안다.

환경 탓, 시절 탓 하기 전에 나보다 더 안 좋은 환경에서 더 힘든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주변 사람 탓 하기 전에 이 말을 항상 되뇌인다. ‘내 주변 사람들의 수준이 곧 나의 수준’. 이제는 주위에 남은 소중한 한명 한명의 사람들과 어떻게 기쁨을 더 오래 같이 나누며 살아갈까를 고민한다. 더 보람찬 일을 어떻게 하면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지를 구상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점점 더 내면의 나와 만나고 주위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나는 하루하루 조금씩 더 행복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한다.

사장의 능력

사장의 역할에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나는 업력과 관계없이 가장 잘해야 하는 것이 바로 적절하고 빠른 의사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의사결정을 빨리 하는 것도 중요하고 제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장이 직접 뛸 필요도 없고, 말을 특별히 잘하거나 글을 뛰어나게 잘 쓸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의사결정은 잘 해야 한다. 처음부터 업력이 긴 사장은 없으므로 사장 역할이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도 의사결정은 빠르게 해야 하며 잘 해야 한다. 그걸 잘하면 초보라도 사장 역할을 잘하는 사람이고 그걸 못하면 아무리 오래 사장질을 했다더라도 그냥 무능한 것이다. 의사결정의 품질과 그 의사결정대로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 설득력, 이 두가지가 결국 사장의 모든 능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만들어 갈 미래가 너무 기대되고 설렌다. 군에 오고 가장 큰 심경의 변화는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까지 신경 쓸 필요를 못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며 살아가기에도 내가 숨 쉬는 백 년은 너무나 짧다. 이제 나에게 열심히 일하며 살아갈 날이 한 40년 정도 남았으려나? 그 안에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키우고 부모님도 챙기고 또 언젠가 보내드리고 할 일이 참 많을 것이다.

나라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그렇다고 의미 있는 내수 규모가 있는 것도 아니며 아이도 낳지 않는 곳에서 우리는 어떤 사업을 어떤 형태로 해야 남은 40년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을 것인가?

아무래도 정치보다는 경제가 국부 창출을 통한 사회 발전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글로벌한 문제와 이슈에의 기여도 이 작은 나라의 정치인인 것보다 경제인이라야 보다 크게 일조할 수 있다고 본다.

회사를 만들어 일정한 주기로 파는 일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한 회사를 세워 영속 가능하고 큰 회사로 만들려면 거시가 받쳐주어야 한다.

거시가 일본을 따라 장기 저성장 국면에 빠지고,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국 최대 기업 완다의 성장 과정을 다룬 책을 보았는데 역시 그냥 나라가 30년간 두자릿수 성장율을 유지한 덕이 컸다.

우리나라의 삼성 현대 대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없던 신흥 사업을 해야 하는데 그런게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회사다. 그러나 성장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5천만의 작은 인구. 같은 노력을 해도 누구는 14억 대상, 여전히 연 8%대의 성장의 혜택을 누린다. 그렇다면 전략적으로 성장성이 높은 나라에 가서 사업을 해야 한다.

물론 여간한 나라에 이미 화교 자본이 다 들어와 우위를 점하고 있고 그러지 않은 나라는 아직 GDP가 너무 낮아 별로 할만한 사업이 없다지만 그런 문제야 노력으로 다 극복할 수 있다 쳐도 내가 사업가로서 외국인 핸디캡이 있다는 것은 주지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80년대의 한국에 태어났거나 2000년대의 중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어쨌든 작금의 현실에 어떻게든 적응하고 적절한 대안을 찾아내야 하리라.

갑자기 내수 인구를 늘리고 장기성장율을 높일 통일과 같은 거시 변수야 내가 그 시기를 예측할 수는 없는 것이고, 인구 감소와 노인 증가 같은 이벤트야 이미 널리 알려진 당연한 미래이므로 이런 환경 변화를 고려하여 내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을 안다.

결국 대기업이나 영속가능한 회사를 만드는 것보다 지금은 그때그때 시대에 필요한 작은 내수 기업을 만들어 빠르게 수요에 대응해 팔고 빠지는 전략을 택하는 것이 더 리스크를 줄이고 고효율을 추구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허나 문제는 내가 회사를 그때그때 만들어 팔고 싶지가 않다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저성장 저출산의 싸늘한 거시 환경 속에서도 한 회사를 쭉 하고 싶다. 높은 성장도 구가하면서…

참으로 앞뒤가 안 맞는 꿈이지만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쉬운 문제였으면 앞서 요란한 수업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손잡고 만들어 갈 앞으로의 회사, 사업, 계획들이 무척이나 설레고 기다려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미

어떤 의미에서는 살면서 적 하나 없이 사는 것도 잘못 사는 것이 아닌가 한다는 오늘 어떤 선배의 말이 와닿아 뇌리에 꽂혔다. 일종의 솔직함이나 인간미 없이 완전을 지향하며 사는 것에 대한 피로를 토로한 말인 것 같았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편한 것을, 나는 어떻게든 모든 이들 마음에 들려고 매일 연극을 하며 살아온 것 같다. 너무나 불편했고 거북했다. 이제 어리지만은 않은 나는 더 이상 모든 이 마음에 들려고 연출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 시간이라도 더 보내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냥 무시하며 살으련다. 나를 적으로 두면 그들이 사는데 더 피곤하고 힘들어지도록, 내가 선한 힘과 좋은 사람들을 갖추면 되는 게임인 것이다.